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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s Iles 섬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해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단순히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일 뿐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살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발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있다.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이 실현 가능한 삶이라고 믿어왔다.

장 그르니에 - 섬

I have often dreamed of arriving alone, with nothing, in a strange city.
It seemed I could live humbly, or rather, in shabby simplicity.
Above all, it appeared that I could keep secrets.
I have always thought that speaking about myself, showing who I am, or acting under my own name is like exposing something most precious that I possess.
Just how precious what I possess? Perhaps such thoughts are merely evidence of a weak spirit.
It might also indicate a lack of the essential strength needed not just for living and for establishing my existence.
I am no longer deceived by illusions.
I do not regard this inherent deficiency as a manifestation of a lofty soul.
However, I still have a taste for such secrets.
A secretive life, not a solitary but secretive life.
For the pleasure of having a life solely my own, I even hide trivial actions.
I have long believed that this dream could be a feasible way to live.

Jean Grenier - Les Iles




2. Through the windows




홍콩에 왔다.

홍콩을 화양연화, 중경삼림의 도시로 기억하는 내겐 
번쩍이는 건물들이 촘촘히 박힌 홍콩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J가 한 낡은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예전엔 정말 유명한 곳이었어’ 

오래전 그곳이 영화를 누렸다는 흔적은 
몇 개의 필름들과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있는 듯했다. 

내 인생엔 짝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몰래 들어가 보거나 
비 내리는 밤 이별 연습을 할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첸 부인이 차우가 떠난 방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것과 같은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졌다.

창문 너머로, 많은 것들이 흘러갔고 
어떤 그리움들은 유희로 남았다.
높은 빌딩 사이에 남아있는 낡은 건물들처럼.

다시 한 겹, 
이제 홍콩은 J가 일하는 곳으로 기억되겠지.

2024년, 1월, 새로운 홍콩에서.



I arrived in Hong Kong. 
To me, who remembers Hong Kong as the city of “In the Mood for Love” and “Chungking Express,” 
the sight of dazzling buildings densely packed in this place felt unfamiliar. 

J pointed to an old building, saying that it used to be very famous. 

The traces of its cinematic glory long ago seemed to linger only 
in a few reels and in the memories of those who reminisced about that era.

In my life, I have never experienced moments like sneaking into the home of a crush or practicing farewells with a loved one on a rainy night. 

Yet, much like Mrs. Chan gazing through the window at the room Mr. Chow had left, 
her eyes brimming with emotion, 
I find myself increasingly reflecting on times gone by.

I gaze through the window at the time that has passed. Much has flowed away, and like the old buildings of Hong Kong that linger amid the towering skyscrapers, some longings remain as a pastime. 

One more layer, 
Hong Kong will be remembered as the place where J works. 

In January 2024, in the new Hong Kong.





3. Landscape painting





여름의 끝 무렵, 계절의 꼬리를 잡듯 더운 나라로 떠났다
여행은 언제나 꿈같다
잠자리에 희미하게 묻어있는 꿈처럼
오토바이 소리, 금색 파도, 밤 공항의 고요한 공기가 
집으로 돌아온 지금까지 남아있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커피를 나르는 앳된 소녀가 되어 보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파는 행상의 여인이 되어보기도 하며
파란 눈의 여행객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일상의 때가 묻지 않은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보는 것
모두가 자신이 되어 살라고 하지만
나를 나로부터 떨어트려 놓는 감각은 잠시나마 나를 자유롭게 한다
멀리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삶은 풍경화같다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풍경화 속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고
이 속도에 익숙해진다면
지금 이 긴 기다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공백은 세상이 네게 답장을 쓰는 중인 거라고
너는 언젠간 아주 긴 답장을 받게 될 거라고


At the end of summer, I left for a warm country as if chasing after the season.
Travel is always like a dream.
As a dream that is dimly stamped on the bed,
I can still remember the sound of motorcycle,
golden waves, and silent night air at the airport. 

In the unfamiliar city, I used to be a young girl that serves coffee and a lady at the sandwich shop, experiencing a tourist with blue eyes.

Being an alien in a place without any grime of everyday.
Everyone says to live as who you are
but the sense of taking apart from myself gives me freedom for a while.

Looking from a distance,
life is like a landscape painting. 

Even by working out and having a good food, it felt like a great life to me. 
The time in the landscape painting  passed slower, 
and once I get used to the pace,
I thought I could overcome such a long waiting. 

Hoping this gap might be the world replying back to you, 
and hoping that you will have that long reply back someday.




4. Four Seasons : Dear, Kappus





친애하는 카푸스씨 잘 지내고 계신지요.

답장이 많이 늦었습니다. 어느새 1년이나 흘렀으니 많이 늦었다는 말도 송구스럽습니다만 
마음속엔 늘 당신에게 보내야 할 답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부디 알아주세요.

여러 안부를 전해 주셨는데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여전히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부터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우 이 정도 쓰고 또 머리가 너무 아파 그만 써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젠 더 미룰 수도 없고 저를 잊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한참 여백이 남은 편지지를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소식을 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때도 두통 얘기와 함께 그 당시의 소소한 일들을 전하고 건강하시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지난해엔 오직 하나의 대상에 온통 마음이 뺏겨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라도 사람이 나무가 될 순 없을 텐데 지난 일 년간 저는 나무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자연도 자연 나름대로의 투쟁이 있겠지만 그 과정은 소란스럽지 않고 비밀스러우며 
다음 계절을 재촉하지 않고 제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나무에겐 봄이 오지 않을 일은 없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저에게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그런 확신입니다.

무언가를 오래 생각하고 그것에 푹 빠져있다 깨어나면 현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무가 되었다 깨어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두통에 시달리곤 합니다.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갑자기 눈을 뜬 것처럼 속절없는 기분이랄까요. 
어느 책에서 보니 나무에게 200년이 꼭 지금의 제 나이와 같더군요. 
이렇게 어느 속도에도 맞추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느라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의 편지에 순 나무 얘기뿐이라 지루하실 수 있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제게 좋은 일은 모처럼 새로운 것에 이 정도의 애정과 관심이 생긴 일입니다.

새벽녘 아직 잠들어 있는 남편의 따뜻한 등에 조용히 이마를 묻고 있자니 오늘은 정말이지 두통이 없을 것 같네요. 저는 앞으로도 나무가 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제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이들의 뿌리에 엉기고 기대어 살아가는 방법뿐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뿌리가 연결된 나무 친구들은 뿌리를 통해 위험을 전하는 일에 민첩하고 
꼭대기에선 빛을 나누는 데 경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덕분에 외따로 서 있는 나무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하더군요.

카푸스씨와 저도 이 첫 편지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와 닿아 있는 사람들에게 모쪼록 좋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도록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젠 낮은 곳에서 현기증 없이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두통은 현실에 살고 있지 않다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다음엔 맑은 의식으로 편지를 쓰겠습니다. 
나무 이야기만 하다가 마무리를 짓는 제가 드리기엔 우스운 부탁입니다만 어떤 소식이라도 전해 주세요.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지 새로 얻은 직장에 적응은 잘하셨는지, 
거슬리지만 치워버리진 못하고 있는 거실의 의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 
카푸스씨의 그런 소소한 일상과 푸념들이 저에겐 큰 즐거움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느끼게 해 주니까요.

당신의,


Dear Mr. Kappus, how have you been?
I'm sorry for this belated reply. Since it has been a year, I even feel sorry to say sorry, but please know that I have always thought about what to write in the reply to you.
As you brought me up to date on many things, what shall I talk about first?
Maybe, I should start with that I’ve been suffering a headache. Even now, I want to put my pen down because of the headache, but I cannot put it off any longer, and concerned with a purely selfish thought that you might forget me, I’m just gazing at my letter sheet, most of which still remains empty.
I don’t remember what exactly I wrote in the last letter. I guess I probably mentioned my headache along with what I was up to at the time and then finished it with “Goodbye and stay healthy.” Nothing has changed now.
Yet, there was just one thing that totally mesmerized me last year.
I’ve often imagined being a tree throughout the past year while it is impossible for a human to become a tree no matter how much you long for. Nature has its own struggles, but they are quiet and secretive. I like how it doesn’t rush the next season but only focuses on its duty. Because trees have a conviction that spring comes no matter what. This kind of conviction is what I need most at the moment.
Sometimes, after I deeply immersed in something for a while, I find the reality rather unfamiliar to me. I suffer a headache whenever I wake up from the imagination of becoming a tree. It feels like it is uncontrollable, like you find yourself at the top of a roller coaster out of the blue. I read in a book that 200 years old to a tree is equivalent to my current age. Perhaps, this is why I have a headache. I’ve lost a grip on keeping up with either of their pace.
It might sound boring to you as I’m only talking about trees in this letter, after a long time since the last one. I wish I could bring up some good news, but the only good thing I can write about is that something new has grown on me like this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At dawn, laying my forehead gently onto the warm back of my husband who was still sleeping, I thought I wouldn’t have a headache today. I know there is no way I’d be a tree. Then, the only way I can put my roots down in this ground is to lean on the ones I love, entangling my roots into theirs, I guess. In fact, the trees whose roots are entangled with one another agilely give a heads-up to each other via their roots under the ground and don't compete over sunlight on the top.
I believe that you, Mr. Kappus, and I have been already connected, loosely at least. Thinking about this makes my mind up to have a healthy mindset so that I could give good energy to those who are connected to me. I’d like to live closer to the ground without feeling dizzy now. For me, headache seems to be a signal that I’m not living in reality.
I promise I will write to you with a fresh mind next time. It might sound silly, since I have written only about trees, but please send me any news of yours – if your kid is growing well, if you fit into the new workplace, what happened to the chair in your living room that you mentioned as unpleasant, but you couldn’t throw away, or whatever. Those little stories or, maybe, grumbles of your daily life come to me as a huge joy, because they remind me that we are in the same world.

Yours,




5. Winter : Northern Lights




오로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의외로 노인들이 많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하루만 노인이 되어본다면 알 수 있을텐데.
춤추는 오로라를 보며 생각했다.
너무 일찍 온걸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이미 보아버리면
앞으로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나.
하지만 곧 알게됐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멀리 떠날 필요가 없음을.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아주 멀리,
비싼 티켓을 끊어야만 볼 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노인들에겐 오로라가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그보다 더 찬란한 순간들이 있었을테니까.
겨울은 따뜻함을 끌어안는 계절.
추운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이 껴안고 더 많이 사랑할까.
나는 어쩌면 추운 나라에서 태어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겨울, 우리 서로를 더 많이 발견하자.
당신 곁에서 여행이 필요없는 삶을 살아야지.


Once, I went to see the northern lights.
Even though it was freezing cold, even for young people,
there were pretty many elderly people unexpectedly.
Perhaps I would know what is most important in life if I could be old just for one day.
I thought, staring at the dancing lights of the aurora.
Was it too early?
Now that I’ve seen such a beautiful thing,
what else could I long for from now on?
But, soon, I realized.
That if you are able to find big and small wonders in everyday life,
you don’t need to go that far away.
But I, in those days, believed they were so far away
that I was not able to find them without expensive tickets.
Maybe the northern lights were not that impressive to those elderly people.
Because they must have had even more resplendent moments in their life.
Winter is the season when you embrace warmth.
I wonder if those who live in cold areas embrace and love more.
Maybe I should have been born in a cold country.
This winter, let us discover one another more.
I will live a life which doesn’t need a travel, staying by your side.




6. Autumn : 심신단련 




Fernando Pessoa's Autumn



7. Summer : 헤세의 여름 Hesse's Summer




봄엔 꿈결에 본 장면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여름이 채 눈뜨지 못한 이불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처럼 찾아왔다. 덥고, 푸르고 비 오고 습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계절. ‘모든 일은 그해 여름에 일어났다.’ 그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올해 여름도 그저 평범하게 지나갔다. 해가 짧아지는 동안, 나와 당신의 젊은 등이 저무는 동안 우리는 더는 한여름의 열기를 좇지 않게 됐다. 다만 모든 아름다운 것에서 한 움큼씩 가득 얻어 힘든 시절에 쓸 수 있게 보관할 수 있다면. 좋은 곳에 가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다. 어떤 것이 사람들을 이토록 무장해제 시키는 걸까. 악역이 없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들. 그런 풍경 속에 우리를 많이 담아두고 싶다.




8. Spring : Cycle of the Life




The pain has lingered on my body for a few days, and I realized the spring already has come when I went outside. Flower buds have already burst out and opened from branches of gaunt trees just like they can’t stand it any longer. It seems like they don’t care anything about my pain, which makes me little bit sad. But I’m so relieved and consoled with things that flow thoughtlessly. If comparing our life to the tree, there’s repeating patter in life; blooming and falling off. We may go through different season. Probably, we may greet same spring only when we have passed different seasons for dozens of times. I know every season gives me a gift but hope that spring stays longer this time. And when we meet later again, I wish our growth ring won’t be much darker.